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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1.17] 와서 보라!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1. 01. 17.
  • 말씀본문 | 요한복음 1:43~51

​  오늘 본문은 신앙의 좋은 친구인 빌립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나다나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1. (편견)과 (선입견)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나다나엘이 처음에는 예수님에 대해서 듣고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영 반응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나다나엘이 이렇게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거부한 이유는 자기 생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다나엘의 말이 옳았습니다. 또 성경 어디에도 "나사렛에서 메시야가 나리라"고 예언된 적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처럼 '나사렛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는 이상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생각하기조차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그릇된 편견을 가지고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여기는 것을 꺾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합니다.

 

​  2. 주님은 우리의 (약점)을 감추시고 (강점)을 드러내 주십니다. 

​ 

  그런데 예수님은 편협한 나다나엘의 약점을 드러내시기보다는 그를 아주 격찬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속과 겉이 다른 간사함이 없는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예수님 앞에 나가 선다면 예수님은 뭐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 "네가 극장에 있는 것을 보았노라." "네가 섬기는 모습을 보았노라." 무엇이라고 하실까요? 마귀는 우리가 약한 부분을 보일 때를 절호의 공격찬스라고 생각합니다. 마귀는 비난을 통해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를 포기하도록 합니다. 이것의 마귀의 실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찾아와 "내 양을 먹이라" 하시며 그에게 하늘의 사명, 비전을 회복 시켜 주셨습니다.

 

​  3. 주님은 진정한 (예배자)와 이미 (함께) 하고 계십니다. 

​ 

  예수님은 나다네엘에게 "너의 친구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 보았노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나다나엘이 "와서 보라!"는 빌립의 말을 따라 '가서 보기' 이전에 이미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로 '가서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와서 보라!"는 말씀처럼 열심히 모이는 것을 신앙생활의 미덕으로 간주하며 교회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19는 이제까지의 공간 지향적은 삶을 뿌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을 사용하는 예배도 어떤 면에서는 공간 지향적인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중요성은 어떤 공간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그 시간이 공간을 압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