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질그릇처럼 연약한 존재임을 실감합니다.
1.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수십 수백억을 호가하는 유리관에 고이고이 보관만 하고 있는 명품 도자기보다도 실제로 유익한 그릇은 쓰임 받는 그릇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질그릇은 마음껏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쓰임 받기를 원합니까? 다만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부자가 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합니다. 우리가 직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직분을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과 모든 사람 앞에 거리낌 없이 쓰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교회 직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쓰임 받는 직분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질그릇같이 (연약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위대한 (보배)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쓰임을 받과 할 때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질그릇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려분도 자신을 질그릇이라고 고백합니까? 우리는 우리가 질그릇같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질그릇 같은 존재임을 몰라서 문제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쓸 때는 그가 질그릇임을 깨달은 후였습니다. 모세가 자기 잘난 맛으로 살 때 하나님은 그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그릇이기 때문에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질그릇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금강석이 돼라!" "질그릇을 보배로 만들겠다"라고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질그릇 안에 보배로 임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희망인 것입니다.
3. 질그릇같이 (연약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깨지기 쉬운 질그릇처럼 바울의 상황도 그런 질그릇의 특성이 극대화되어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깨지기 쉬운 질그릇이라고 하더라도 안전한 곳에 보관만 잘하면 깨지지 않겠지요. 하지만 바울의 상황은 마치 누가 질그릇을 깨뜨리려고 사방에서 압력을 가하거나, 아니면 바닥에 내던져 버린 상황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깨지기 쉬운 질그릇이었음에도 아직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질그릇에 늘 보물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아는 지식,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보배이신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도 질그릇 안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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