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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6.21]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0. 06. 21
  • 말씀본문 | 마태복음 10:32∼34

화평의 중재자가 되어야하는 한국교회는 더욱 더 성숙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은 칼을 주러 오셨다고 하셨을까요?

 

1. 이 칼은 (자신)을 다듬는 (용단)의 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칼은 다른 사람을 헤치기 위한 무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주 분명하게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마 26:52)고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 “칼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은 다른 사람을 찌르고 자르고 헤치는 그런 칼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8:8~9절의 말씀을 보면, 그 칼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무기가 아니라, 사단의 도구가 된 내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잘라 내는 칼입니다. 용단의 칼을 말합니다. 먼저는 나 자신을 다듬는 칼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이 칼은 자신의 수천 가지 욕망을 자르고 자아를 죽이고 버리는 칼입니다. “마음의 쓰레기들을 도려내고 깨끗해져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버렸습니까?

 

2. 그 칼은 내 (자신)의 (말)입니다.
말씀을 보면 칼은 곧 자신이 하는 말을 가르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칼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듯이 사람은 그의 말로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말은 칼과 같습니다. 혀는 독도 되고 약도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이렇듯 우리가 하는 내 입술의 말이라고 하는 칼이 결국 구원의 천국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합니다. 말로 예수님을 시인하기도 하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로마서에서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이 말씀이 오늘 본문에 그대로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심판대 앞에서 그를 시인하겠다.” 이 말씀은 대단히 종말론적인 말씀입니다.

 

3. 그 칼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의 전신 갑주에서 유일한 공격무기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입니다(엡 6:17).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는 그때마다 교묘하게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마귀를 물리치실 때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곡을 찌르시면서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도 이 칼을 받아야 이 험한 세상에서 믿음을 잃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검으로 악을 자르고 사탄을 물리치고 내 가족을 지켜야 합니다.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그 방법은 성령의 검을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사용하는 도끼는 빛이 납니다. 그러나 물에 잠긴 도끼는 물마저도 버립니다. 말씀의 칼, 성령의 검을 잘 사용하면 내 삶이 빛이 납니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고 묵혀두면 무력한 신앙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