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설교

[05.17] 그는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0. 05.17.
  • 말씀본문 | 사도행전 17:22~31

​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중에 아테네 아레오바고 언덕에서의 설교 내용입니다. 

 

​  1. (미신적)인 (종교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바울이 보기에 많은 신상을 세워놓고 그 앞에서 치성을 드리는 아테네 사람들은 매우 종교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종교성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헬라어 단어 εισιδαιμονεστέρους (데이시다이모네스테루스)는 '귀신을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매우 미신적인' 혹은 '아주 종교적인'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는 신을 섬기는 것도 힘든데, 알지 못하는 신까지 섬기다니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게 미신의 특징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을 섬깁니다. 그런데 알지는 못하지만 섬기는 것은 아주 열정적입니다.

 

​  2. 하나님은 (모호)하지 않고 (분명)하십니다.

  알지 못하는 신을 사람들은 모르기에 더듬어 찾습니다. 그래서 대충 더듬은 이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짐승들의 형상이나 기묘한 형상을 만들어 내어 이것이 신이라며 숭배하기 시작했고, 좀 고상한 이들은 여전히 더듬고 더듬으면서 아직도 알 수 없다고 신중한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알지 못하는 신을 더듬더듬 더듬어 찾으려니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기에 그들은 윤회를 통해 수억 겁의 세월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결단입니다. 결단하는 그 순간에, 받아들이는 그 순간에 구원의 역사는 완성됩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더듬기에 말을 애매하게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분명합니다. 애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성경책을 통해 분명하게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  3. (현재)의 상황은 최종 (결과)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울의 아테네에서의 전도와 설교는 실패한 경우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에서조차도 바울의 이와 같은 설교는 실패한 것으로 기억되거나 아예 잊혀 가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것은 오늘의 교회가,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거룩한 신전에서, 가시적인 종교 제도에서, 위엄 있는 예배형식에서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과오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아테네의 전도 결실을 말하면서 두 사람 이름만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전도를 받아서 나중에 그리스(헬라)를 복음화시키게 되었고, 오늘 그리스는 약 98%가 그리스정교회를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슬람이 발을 붙이지 못한 곳이 그리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