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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3.29]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0. 03. 29.
  • 말씀본문 | 요한복음 11:14~30, 39~46

​  오늘 본문의 내용은 위중한 병환 중에 있는 나사로를 위하여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출동하여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려내는 이야기입니다. 

 

​1. 주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응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유념하여 보아야 할 우선적인 내용은, 예수님께선 '나사로가 아프다'는 전갈을 듣고서도 곧바로 그를 찾아가지 않으신 점입니다. 소식을 들으시고서도, 계시던 곳에 이틀이나 더 머무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께서 나사로에게 갔을 땐, 이미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인지 마리아와 마르다의 반응이 상당히 냉담한 것을 보게 됩니다. 왜 마르다와 특히 마리아는 더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기까지 기다리셨고, 그리고 나서 뭔가를 하시려는 의도와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42). 그것은 예수님을 바르게 믿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2. 진정한 믿음은 (죽음)을 넘어 (생명)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도마가 "우리도 그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하는 장면 이후, 제자들은 이 이야기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마의 그러한 말은 용감무쌍한 전사의 말일 수는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말은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죽음 그 다음에 있는 참 생명을 바라보고 말해야 합니다. 마르다와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왜 그렇게 예민하였습니까? "이제 나사로가 죽었으니 다 끝났다. 절망이다. 더 이상 예수님에게서 희망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 "나는 너희의 병이나 고치고, 먹을 것이나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 왔다. 나는 그런 생명의 구원자이다."고 하시며, 죽음 너머의 생명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3. 우리는 (오늘)을 (부활) 생명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  본문 말씀이 오늘의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이 세상 이후의 저세상에서나 있는 사건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라는 점입니다. 즉 이 땅에서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부활을 나사로의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 다니는 목적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한 교제를 하거나 높은 수준의 교양을 쌓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죽음을 넘는 영원한 생명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증거하는 사명자로 살아가도록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내 뜻을 버리는 것도 아니고 내 뜻대로 고집하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이란 오히려 내 뜻을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