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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4.12]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0. 04.12.
  • 말씀본문 | 사도행전 10:34~41

​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에서 베드라고 행하는 세 번째 설교로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의 가족들에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  1. 먼저 (십자가)가 분명해야 (부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 전할 때마다 증거가 된 내용의 핵심은 다름 아닌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본문에서도 베드로가 고넬료 가족에게 들려주고자 한 말씀도 역시 오직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은 믿습니다. 그러나 자기 죽음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부활은 듣기만 하지 체험을 하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죽으셨음'을 인정하고 믿지만, 그러나 "자기도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는 사실은 믿지 않기 때문에, 실상은 십자가가 분명치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십자가 다음에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이 분명해야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  2. 부활은 (믿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부활 사건을 종합해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부활을 믿는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봤다! 만났다!"라고 했지,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산다"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가 부활을 증거로 삼은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부활의 증거는 빈 무덤도 아니고, 세마포도 아니고, 두건도 아니고, 이런 현상적인 것들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내가 오늘 살아가는 모습이 진정한 부활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디서 만나야 합니까? 오늘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  3. 진정한 부활 신앙은 모든 (차별)과 (혐오)를 뛰어넘습니다.


​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설교의 서두에서 "우리 하나님은 나라와 민족을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34절)는 사실을 제일 먼저 고백하며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을 경험한 사람, 부활 신앙을 갖고 삶으로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들의 분명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차별과 혐오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베드로가 체험한 성부 성자 성령님의 말씀과 가르침은 그동안 베드로가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방인에 대한 생각을 다 무너뜨리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베드로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부활의 생명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혐오하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합니다. 화해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변화를 일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