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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4.26] 우리가 어찌할꼬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0. 04. 26
  • 말씀본문 | 사도행전 2:36∼42

오늘 본문은 사도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를 들은 청중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장면입니다.


1. 우리가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를 (다짐)해야 합니다.
“어찌할꼬!”라는 말은 실천에 대한 물음입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천이 없는 감동은 자기 속임수입니다. 눈물 조금 흘리고 하나도 바뀌지 않은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감동을 받았으면, 가슴이 찔렸으면, 삶을 고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든지, 항상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가 무엇을 새롭게 안다고 해도, 오늘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이것이 실제로 중요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기를 다짐하고 (갈망)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세례를 받으라”라고 하였습니다. 세례란 무엇입니까? 일단 표면적인 의미는 ‘죄를 씻어주신다’는 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씻음 받았다”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공식적인 용서의 표가 바로 세례입니다. 그리고 이 세례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죄의 욕망대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명령만 따라 살겠노라!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에 힘입어 살겠노라!” 하고 고백하는 행위가 바로 이 세례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엄청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기를 갈망하는 행위가 바로 세례입니다.


3. (함께)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고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은, 나 혼자서 살 수가 없습니다. 내 힘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혹시 어떤 종교에서는 산에 들어가서 한 30년, 40년 혼자서 도를 닦으면 그 도를 깨우칠 수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믿음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서로 섬기면서 신앙이 성숙해져 갔지, 혼자서 하나님을 독대해서 구원받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모이기를 ‘힘쓰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의 모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땀 흘려서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 공동체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