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6]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본문에서 바울은 교회에서 분쟁이 생기고 갈등하면서 파벌로 나뉘게 된 것은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 아직도 (육신)에 속한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이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특별히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열광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영에 속한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믿었고 성령의 은사도 받았으며 영적인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믿음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말과 행동은 매우 달랐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전혀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행동했습니다. “육신에 속했다”는 이 말은 한마디로 “미성숙하다”는 뜻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이 툭하면 쉽게 서로 틀어지고 싸우듯이, 교회 안에서도 편당을 짓고 갈등했던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은사)보다 (십자가) 정신에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령을 받은 증거로 은사를 꼽았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은사를 받은 자는 신령한 자요, 은사를 받지 못한 자는 아직까지 수준이 낮은 신자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십자가를 안다고 하면서 성령이 함께하는 기준을 십자가에 두지 않고 은사에 두었기 때문에 결국 이들에게는 십자가가 설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십자가를 붙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와 도덕적으로 고상한 신자 되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을 보고 있습니까? 과연 십자가 앞에서도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이 싸움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 싸움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같이 신앙이 우월로, 분쟁으로, 시기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3. 신앙과 삶의 (초점)을 (임마누엘) 주님에게 두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나님뿐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 “너희는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 등, 즉 우리 신앙인들의 모든 관심과 초점을 아볼로, 바울, 베드로와 같은 사람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는 하나님의 큰 밭에서 하나님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하나의 작은 ‘일군’에 불과합니다. 물론 심는 수고, 물을 주고 양육하는 수고도 귀하지만,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이 없다면 그 모든 수고는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수고가 귀한 것인 만큼 다른 동역자의 수고도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이고 하나님은 주인이십니다. 이것을 깊이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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