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5]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편 95편은 "하나님을 즐거이 예배하자!"는 호소로 시작됩니다. 예배에 대한 간절한 그런 마음이 오늘 시편 속에 담겨 있습니다.
1. (예배)에 앞서 (관계)가 명확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면 무조건 결혼하는 줄로 압니다. 사랑해서만이 아니라 고백을 해야 됩니다. 아무리 짝사랑하더라도 고백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즐거이 예배하자!"하고 나서 3~5절까지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아무 관계가 없으면 아무리 내 마음속에 감정이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약 그 대상이 나와 어떤 관계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면, 내가 계속 편지를 보내고, 선물을 보내고, 그의 집 앞에 계속 서 있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은, 일방적으로 내 욕구만을 채우려고 하는 스토킹 범죄와 같은 것입니다.
2. 어떤 (형편)에서도 (예배)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지금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리에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의 몸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심장이 잘 뛰면 세포들이 아무리 죽었다 하더라도 그 세포가 다시 살아납니다. 아무리 장거리를 뛴다고 할지라도 심장이 튼튼하면 문제가 안 됩니다. 오히려 움직일수록, 뛸수록 생기가 돌고, 숨차고 힘들지만, 더 기쁘고 더 좋고 더 신나는 법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예배에 대한 마음들을 새롭게 갖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3. 진정한 (예배)는 (성령님)이 주관하시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성령님이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드는 예배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배의 순서를 맡은 분들이 성령의 은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우리는 다시 모두 예배당에 모여서 주일예배를 함께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배의 회복을 당연하게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은 온갖 종류의 제물들과 온갖 절기들과 제사들을 싫어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예배와 함게 못된 짓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배 회복의 핵심은 예배 자체가 아니라, 예배자의 영성과 예배자의 일상에 달려있습니다. 다시금 예배당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의 삶을 바르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요 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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