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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10.27]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19. 10. 27
  • 말씀본문 | 누가복음 18:9~14

오늘은 종교개혁에 대한 반성과 함께 오늘의 과제를 염두에 두면서 주어진 본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감사)라고 해서 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속의 비유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바리새인을 거부하고 오히려 세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반전이 결론입니다, 그것은 마치 교회의 모든 모임에 빠짐없이 출석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며 도덕적으로 똑바른 삶을 사는 사람보다, 생전 처음 어쩌다 교회에 나온 사람이 더 의롭다고 하시는 격입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금식이나 십일조가 잘못입니까?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 문제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젭니까? 문제는 다 옳고 맞지만, 거기에 있는 교만입니다. 그런데 이런 바리새인의 감사기도 내용을 보면서 우리도 그런 감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2. (교만)한 감사는 더 이상 (감사)가 아닙니다.

잘못된 감사의 원인은 교만에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교만한 기도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자신을 철두철미하게 의인으로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영적 교만은 자기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면 방 안이 깨끗해 보입니다. 그러나 커튼을 열고 햇볕이 들어오면 보이지 않았던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의롭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빛으로 보면 죄와 허물투성이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마치 창문을 닫아놓은 방안에서 먼지가 없다고 여기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아주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필요한 것은,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하는 것은, 바로 겸손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심의 확실한 증거는 겸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시작은 물론 그리스도인의 삶의 바탕이 되는 매우 중요한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502년 전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당시 개신교의 대표적 모토는 ‘이신칭의’ 곧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받는다”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신칭의’ 교리는 한편으로는 ‘값싼 구원’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배타적 구원’으로 흐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과 전통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맹목에 가까운 배타적인 공격적 태도를 숨기지 않는 한국교회의 모습이야말로 바리새주의의 현대판 부활이 아닌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