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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9.01]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 설교자 | 이상동 목사
  • 설교일자 | 2019. 09. 01.
  • 말씀본문 | 누가복음 9:46~50

​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입견, 선입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선입관을 없애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셨습니다. 어린아이, 가장 작은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큰 자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  1. 어린아이 같이 되실 (예수님)을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  이것은 큰 자이신 예수님께서 이제 아무 저항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넘겨져서 조롱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흡사 아무 힘도 없고 비천하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처럼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작은자가 되신 예수님을 '주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 말은 메시아라는 이름에 근거해서, 그 이름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그 사건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말도 안되는 기가 막힐 일들이 우리에게 닥쳐올 때 메시아의 십자가의 사건을 기억하고 그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사망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주의 이름에 근거해서 부활과 같은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  2. 주의 이름 때문에 (용납)하며 사는 삶이 (신앙 생활)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생활은 말도 안 되는 인생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화만 날 뿐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내가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용납할 수 없는 모든 일을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말해서 주의 이름때문에 용납하며 사는 사람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일도 기꺼이 용납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의 신앙생활이고 주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방식일 것입니다.


​  3. 정말로 큰 자는 (주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  여전히 제자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입관을 가지고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영웅담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큰 자는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되는 상황이나 대상을 주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메시아임에도 십자가를 지셨던 주님을 생각하고 그 십자를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으면, 이전에 용납할 수 없었던 일도 이제는 기꺼이 용납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은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 됩니다. 어린아이를 주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삶이 바로 큰 자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