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1]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입견, 선입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선입관을 없애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셨습니다. 어린아이, 가장 작은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큰 자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1. 어린아이 같이 되실 (예수님)을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자이신 예수님께서 이제 아무 저항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넘겨져서 조롱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흡사 아무 힘도 없고 비천하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처럼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작은자가 되신 예수님을 '주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 말은 메시아라는 이름에 근거해서, 그 이름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그 사건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말도 안되는 기가 막힐 일들이 우리에게 닥쳐올 때 메시아의 십자가의 사건을 기억하고 그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사망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주의 이름에 근거해서 부활과 같은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2. 주의 이름 때문에 (용납)하며 사는 삶이 (신앙 생활)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생활은 말도 안 되는 인생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화만 날 뿐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내가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용납할 수 없는 모든 일을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말해서 주의 이름때문에 용납하며 사는 사람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일도 기꺼이 용납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의 신앙생활이고 주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방식일 것입니다.
3. 정말로 큰 자는 (주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제자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입관을 가지고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영웅담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큰 자는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되는 상황이나 대상을 주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메시아임에도 십자가를 지셨던 주님을 생각하고 그 십자를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으면, 이전에 용납할 수 없었던 일도 이제는 기꺼이 용납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은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 됩니다. 어린아이를 주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삶이 바로 큰 자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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