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4]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1부)
예수님은 유대 전통적인 신앙의 모델들을 퇴출시키고, 예상 밖의 사람인 사마리아인을 새로운 모델로 제시하셨습니다.
1. 그가 ( 누구 )인가를 ( 따지지 ) 않았습니다.
율법사가 "내 이웃이 누구이니이까?"라고 묻는 것은, 내가 도와야 할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머전 따져보고 나서 그 이후에 돕겠다는 속마음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도울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자세히 살표보고 돕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모델, 곧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런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선 이방인들은 도울 수 없었습니다. 율법에 도우라고 명시되지 않은 사람들은 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저들은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을 도와도 되는지 여부를 따져보고 나서 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새로운 모델로 제시한 사마리아인은 지금 강도 만난 사람이 누구냐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의 다급한 필요만 보았을 뿐입니다. 다만 죽어가는 그 생명만 보았을 뿐입니다.
2. ( 결과 )를 ( 기대 )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율법사가 질문한 까다닭은 밝혀줍니다. "그 사람이 자리를 옳게 보이려고" 즉 그가 이웃사랑에 대해 질문을 한 것은 자기를 옮게 보이고자 하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본문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도 이런 풍조에 물드렁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고 그가 회복되기도 전에 떠났습니다. 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막 주인에게 돈이 더 들면 나중에 돌아올 때 갚을 테니 최선을 다해서 돌봐달라고 당부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사랑을 했으면 알려지기를 기대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은밀한 중에서 다 보시고 아신다는 것 그 자체를 믿고 오직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 말 ) 없이 ( 실천 ) 했습니다.
본문에서 문제를 제기한 율법사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려고 접근했습니다. 영생을 신학적 논쟁거리로 삼아 시비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도 이 율법사와 같은부류의 사람들입니다. 토론에익숙하고 논쟁을 일삼는 사람들입니다. 한참 토론해 보고 결론이 나도 따르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토론하다 지쳐서 토론을 위한 토론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사마리아인은 달랐습니다. 묵묵히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왔을 뿐입니다. 사랑을 그저 몸으로 실천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골자를 알 수가 있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런저럭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말만 하지 말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관련링크
- 이전글[07.14]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2부) 19.07.14
- 다음글[07.07] 첫 이삭 한 단 19.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