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1]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바울은 그 어떤 교회보다도 육신적인 문제가 많았던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육신을 따라 알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1. (육신)을 따라 (알지) 말아야 합니다.
“육신을 따라 안다”는 것은, 신앙적인 관점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과 관점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무한경쟁 시스템의 속에서 피라미드의 꼭대기까지 올라가기 위해선 재빠른 계산과 남다른 판단력과 시대 흐름에 대한 정확한 예측 등 남보다 똑똑해야만 합니다. 어수룩하거나 느려선 올라가기는커녕 아래로 밀려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것이 ‘육신에 속한 판단력’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똑똑하다고 인정되는 이런 판단력과 생각들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죽이고 내가 올라갈 것인가?” 하는 것에 목표가 있기에, 성경적으로 보면 결국 죄와 연관되는 것입니다. 죄를 낳게 하고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인 참된 그리스인들은 바로 이런 생각과 가치관에서 벗어난 사람인 것입니다.
2. 남은 생애를 (화목)케 하는 직책에 (충성)해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간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남은 생애를 화목게 하는 직책을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과 화목하여지라고 우리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본문에 반목해서 나오는 화목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탈라게”인데 원래는 “화해”라는 말입니다. 아무튼 화목과 화해는 갈등과 분열을 전제로 하는 말인데, 화목은 누군가가 나서서 이루어야 가능합니다. 이 화목은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누군가 나서서 화목제물 되거나 헌신을 하거나 수고가 있어야 화목도 화해도 이루어집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도 누군가가 나서서 예수님의 희생처럼 희생해야 이루어집니다. 이웃과 화해도 중재가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오늘 국가 간의 화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도인은 피스 메이커야 합니다.
3. 겉 사람의 (직책)보다도 속사람의 (존재)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충성된 믿음의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뭔가 열심히 헌신하고 희생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매우 부담스러워하면서 예수를 오래 믿을수록 점점 기쁨이 없어지고 의무감과 부담감만 천근만근 느끼며 체면 때문에 교회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부탁하는 것은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맛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은 전혀 새로운 삶은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면 즐거움은 말할 수 없이 커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유익한 것이 좋아지고 해로운 것이 싫어지는 것은 정말 큰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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