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1]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여인들이 무덤에 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이렇게 기쁜 일이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나타났는지 생각해봅니다.
1. 주님을 ( 끝까지 ) ( 사랑 )하는 사람입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을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간을 함께 지내며 예수님을 섬기다가 예수님께서 골고다에 가실 때도 계속해서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그 고통스러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다른 남자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이 여인들은 끝까지 무덤까지 따라가서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사실 무덤에 가봐야 별수가 없을 터인데 그렇게 한 것은 여인들이 생각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갈 만큼 용감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이 여인들을 보통 여자들이 아닌 특별한 여인들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2. ( 말씀 )을 믿는 것이 진정한 ( 부활 신앙 )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그 사랑은 어설픈 사랑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불신앙에 가깝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리라고 하셨는데 왜 무덤에 찾아갑니까? 살아나리라고 했는데 왜 시체에 바를 향유인 비싼 기름을 준비해서 뛰어가는 이유가 뭐냔 말입니다. 여인들이 예수님께 드리려고 가져갔던 향품이나 향유는 그 자체로는 귀한 것이지만 사실 예수님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엉뚱하게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들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고 부활의 첫 증인이라는 이름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음에도 그 마음을 예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이렇게 귀한 결과를 주셨습니다.
3. 부활은 ( 믿는 ) 것이 아니라 ( 사는 ) 것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내가 부활을 믿는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봤다. 만났다!”라고 했지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초대교회의 증언은 부활은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부활의 증거가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부활은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지 부활은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부활을 믿는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산다”라고 말합니다. 부활의 증거는 빈 무덤도 아니고, 세마포도 아니고, 두건도 아니고, 이런 현상적인 것들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내가 오늘 살아가는 모습이 부활의 증거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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