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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5.12] 다비다야 일어나라!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19.05.12
  • 말씀본문 | 다비다야 일어나라!

  오늘 본문에서는 욥다에서 ‘다비다’(히브리어) 또는 ‘도르가’(헬라어)라고 하는 여 제자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주님은 다비다의 ( 부활 )을 통하여 ( 사랑 )의 삶을 강조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다비다 사건은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기적을 말하려 하기보다, 그것보다 먼저 “다비다처럼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베풀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섬기며 사는 삶, 즉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정말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며 사랑으로 베풀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게 하고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복인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다비다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다비다를 ‘여 제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참으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으로서 항상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런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2. ( 염려 )와 ( 근심 )은 사랑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을까요? 우리 힘으로는 다비다처럼 살아보려고 애써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가족에게조차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없고 진정한 도움을 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착각 중의 하나가 자식을 위해서 걱정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염려와 걱정은 영적으로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렇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염려해서 정말 더 건강해지고 결혼도 빨리하고 공부도 잘하게 되고 살도 빼게 되고 교회도 잘 나오게 된다면, 기도하지 말고 염려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염려하면 잔소리하게 되고 잔소리는 문제를 더 악화시킵니다.

 

 

3. 예수님과 함께 ( 죽고 ) 예수님으로 ( 사는 )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다시 사는 십자가로만 가능합니다. 두려움과 근심에 사로잡힌 여러분의 옛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평안과 사랑과 능력의 예수님이 여러분의 생명이 됩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다비다의 사건이 증거가 되는 것이 이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비다가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비다가 십자가 복음이 분명한 사람이었다는 말씀을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지금도 여러분이 십자가를 붙잡을 때 다비다에게 하셨던 것처럼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영혼이 염려에서 건짐을 받고 가정이 어두움에서 건짐을 받고, 교회 교우들과 이웃들에게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