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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1.13]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19.01.13
  • 말씀본문 | 누가복음 3:15∼22

본문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기다림들이 거대하게 하나로 뭉쳐 한 인물에게로 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 강력한 ) ( 메시아 )를 갈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 전체의 처절한 고통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늘을 바라보며 그럴수록 한 인물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세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예언자들이 말해왔던 메시야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그들의 레이더에 한 인물이 포착됩니다.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당대 권력층에 대한 주저 없는 질타와 엄격한 금욕 생활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세례요한은 “나는 메시야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메시야는 나보다 능력이 훨씬 많으신 강력한 분이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모든 철학과 사상과 정치와 경제도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모두가 메시야니즘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셨습니다.


2. 예수님은 ( 십자가 )와 ( 부활 )의 메시야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각종 표적을 행하실 때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들의 메시야 관과는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부활하신 후에는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셨는데, 그것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정치적 메시야가 아님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잘못된 메시야 대망신앙을 거부하시듯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십니다. 이것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예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야이신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번 제자들에게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확실하게 예고하셨음에도 제자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관심이 세상적인 메시야 관에 고착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3. 세례자로 사는 것은 ( 고백 )의 문제가 아니라 ( 사람 )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굳이 세례를 받아야 하실 분이 아니셨음에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소리와 함께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 장면을 공생애의 시작, 메시야 취임식, 메시야로서의 자아의식의 확립 등 여러 가지로 해석합니다. 특히 누가는 세례요한의 투옥으로 시간과 공간을 단절함으로 세례요한의 세례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됨의 관계를 철저히 끊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사람의 임명이나 기름부음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불세례, 성령세례와 관계해서 매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에게 순종하며 사는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