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0]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오늘 본문에는 이 세상의 그 어느 혼인보다도 훨씬 파격적인 결혼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1. ( 자격 )과 ( 가능성 )이 전혀 없어도 괜찮습니다.
본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헵시바’ “나의 기쁨이 그녀 안에 있다”, ‘쁄라’ “신부”라고 하시며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근거로 이스라엘을 헵시바, 쁄라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까? 그 근거와 그 출발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함 때문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그러시는 것입니다. 즉 핵심 키가 되는 말씀인 1절에서 “시온, 예루살렘에 의(체다카)와 구원(예수아)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인 그 ‘의’를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자격이나 가능성이 없어도 괜찮다는 말씀입니다.
2. ( 구원 )은 하나님과의 ( 관계회복 )입니다.
히브리어 ‘체다카’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은 히브리어로 ‘예수아’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은 예수님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인격적인 교제란, 그저 하나님의 존재를 믿거나 ‘예수님이 나의 구주요 주님이시라’라는 것을 아는 것 아니라, 주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며, 주님께서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격적인 만남의 관계란, 단지 시간의 길이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격적인 사귐은 말의 양으로도 깊어지지 않습니다. 올바른 관계, 인격적인 만남은 오직 사랑과 신뢰 속에서만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립니다. 오직 사랑과 신뢰가 함께 어우러질 때만 인격적인 부딪힘이 일어나게 됩니다.
3. 그리스도인들은 ( 거룩한 ) ( 자존감 )이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관계’란, 한쪽만의 일방적인 관계를 뜻하지 않습니다. 올바른 관계는 쌍방이 서로 연결되고 소통되며 친밀감을 느끼고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기뻐할 정도로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분명 거기에는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어떻게 살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니 제멋대로 살아도 좋다는 말이구나!” 하고 그렇게 생각할 분들은 없을 겁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우리는 영원한 하루살이들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 주인이 바뀌었다, 내 머리로 살지 않고 예수님 머리로 살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결단하며 살 때, 우리는 우리의 사연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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