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1. 주님의 날이 (가까워) 올수록 더욱 ( 기뻐 )해야 합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말은 초대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던 표현으로 아람어로는 ‘마라타나’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우니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너무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좁은 마음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절)고 합니다. 바울은 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권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가 눈물 속에서도 기쁨의 서신을 쓰며, 자신도 기뻐하며, 성도들을 향해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주께서 가까우시니라!”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모든 ( 염려 )를 ( 기도 )로 바꿔야 합니다.
주께서 가까움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라면 염려하기보다 기도해야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우리가 많이 듣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참 어려운 말입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조절이 되어야 말이지요. “염려하지 말자!”고 다짐한다고 저절로 염려가 안 됩니까? 성경은 염려가 내 머리에 떠오를 그때가 기도할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를 안 할 수는 없으나 그 염려를 기도로 바꾸는 것은 가능합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면 그 염려를 평강으로 바꾸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평강으로 지켜주십니다.
3. 주님과의 ( 친밀함 )이 없이는 ( 열매 )도 없습니다.
주께서 가까움을 느끼며 관용하고, 염려하기보다는 감사함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주님과의 친밀함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관용은 주님과의 친밀함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고 많아지듯이, 우리의 기도에도 주님과의 친밀함이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친밀함은 단숨에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매일 주님과 깊은 사귐을 나누는 것입니다. 모든 인격적인 사귐은 일대일의 만남에서 시작합니다. 군중 사이에 섞여서 일대 다수로 만나는 것으로는 진정한 사귐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강절을 발판 삼아 매일 하나님과 독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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