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8]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오늘 본문은 한나의 기도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2장에서의 한나의 기도는 1장에 나오는 한나의 기도와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1. 우리의 기도도 ( 성숙한 ) 기도로 ( 변화 )되어야 합니다.
대부분 기도는 중심이 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1장에서의 한나의 기도는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사”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여종이 누구입니까? 한나입니다. 한나도 처음에는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기도와 비슷합니다. 이전에 한나도 분명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괴로움에 빠져있는 기도였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어쨌건 나 중심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기도의 촛점이 거기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1장에서 그렇게 기도한 이듬해 한나는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무엘을 낳고 난 다음에 드린 기도가 바로 오늘 본문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달라고 하는 간구의 기도가 아니라 감사와 찬양이 중심이 된 기도였습니다.
2. 기도의 궁극적인 ( 목적 )은 ( 하나님 )을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나의 기도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변했느냐?” 하는 것은 한나는 기도응답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만족스럽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간절한 것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채워지고 얼마쯤 지나면 또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한나는 그렇게도 간절히 바랐던 그 아들을 성전에 맡겨놓고 이제는 그나마 있던 아들 하나 마저도 없는 형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만족스러워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제부터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이 분명한 체험 때문입니다.
3. 기도응답은 ( 감사 )의 조건만이 아니라 새로운 ( 사명 )의 시작입니다.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아직 왕이 없었을 시기였는데 한나는 “왕에게 힘을 주시고, 기름부음 받은 왕의 권세를 높여달라”고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의 기도를 종합해보면 하나님을 체험하는 기도의 깊은 자리로 들어간 한나는 아들 사무엘이 장차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지금 영적으로 내다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한나는 아들을 낳는 것이 기도 응답의 최종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기도 응답으로 낳은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뜻과 또 다른 사명이 있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진정한 기도응답은 상황이나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이 곧 응답입니다. 그로 인해 내 믿음이 새로운 사명의 자리로 진보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기도응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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