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0.]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에스더서가 보여주는 영적인 교훈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매우 큰 도전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1. (마귀)의 (종)된 인생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만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을 적으로 돌리고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귀에 사로잡혔기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나만 알고, 내 것만 아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만이 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생각이라고 무조건 다 나쁜 생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는데, 이 때 마귀는 사람의 일을 자꾸 생각하게 한 것입니다. 사람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합니다. 인본주의적인 생각만을 하게 만듭니다. 하만은 그러한 인본주의의 최고의 표상입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이리요? 나 외에는 없다”는 이런 생각과 말과 행동의 이런 일들이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2. (고난) 속에서도 신앙의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하만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르드개와 같은 인물도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서의 모든 분위기, 특히 신앙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존재입니다. 그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신앙의 주도권을 빼앗기거나, 신앙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신앙적인 분위기를 지켜나갔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의 초점은 주인공인 에스더보다 2인자인 모르드개에게 모아져야 합니다. 모르드개의 신앙이 바로 에스더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드러나 보이는 1인자도 중요하지만, 1인자를 만들어내는 2인자는 더욱 위대합니다. 에스더 왕후의 배후에는 모르드개가 있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있었기에 에스더 왕후와 유대인들의 구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조합들을 정확하게 사용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3. (십자가) 순종만이 오늘 우리의 (본분)입니다.
에스더는 오늘 본문에서 조국을 구하고 동족을 구할 수 있기까지 적어도 몇 가지를 내놓았습니다. 당시 함부로 아하에스로 왕에게로 나갔다가는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누구에게나 단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내놓았습니다. 자신의 몸을 내놓았습니다. 권력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하며 민족의 고통을 함께 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이는 “어쩌면 잘 하면 안 죽을 수도 있겠다”가 아닙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마음을 먹는 순간 에스더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더의 순종과 신앙고백은 바로 십자가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누가 나무에 달아야 할 하만입니까? 오늘 누가 역경 가운데에서도 신앙의 분위기를, 영적인 불씨를 살려나가는 모르드개입니까? 오늘 누가 과연 “죽으면 죽으리라”고 십자가를 지고 순종하는 에스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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