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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4.01]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18. 04.01.
  • 말씀본문 | 요한복음 20:1~18

  오늘 우리는 죽은 예수님의 시신을 찾지 못해 울고 있는 모습은 아닙니까? 생명이 없는 죽은 믿음을 찾고자 방황하며 눈물 흘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1. 부활 신앙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계시)의 체험으로 시작됩니다.


부활 신앙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증거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것으로는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는 표정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 지적인 인식보다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만남의 사건이 있어야만 부활의 능력이 내 삶 속에 뚫고 들어와서 그 능력을 드러냅니다. 기독교 신앙에는 우리가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즉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주셔야만 비로소 우리가 그분을 제대로 믿게 된다는 점입니다.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2. 부활 신앙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함께)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불신자를 대상으로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전한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다!”라는 여러 증거들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정작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정말 우리와 함께 하시느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진정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라야 비로소 삶을 변화시키는 믿음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생일을 축하할 때, 생일의 주인공이 함께 하는 생일잔치는 떠들썩하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생일의 주인공이 함께 하지 않는 생일잔치는 분위기가 엄숙할 뿐입니다. 부활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매 주일이 부활절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능력이었습니다.

 

3. 부활절은 (기념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입니다.

 

  예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인정한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지금 여기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 참된 하나님과 연결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워져서 전에 없던 질적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부활신앙의 핵심이요 요점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부활이 문제로 느껴진다면, 문제의 원인은 부활이라는 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세계관을 고집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는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부활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쟁을 해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가 부활을 믿는지? 안 믿는지?”는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부활의 삶을 살게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