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1]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요나는 사명감이 부족해서 불순종한 것이 아니라, 나름 요나로서는 타당한 이유와 판단력을 가지고 다시스로 가기로 결단했습니다.
1. ( 소명 )의 길은 ( 성공 )를 추구하는 길이 아닙니다.
요나가 보기에 다시스야말로 이상적이고 보다 더 성공적이고 합당한 선교지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요나가 가는 다시스를 성공주의에 빠진 사명자의 길이었다고 해석합니다. 오늘 교회들의 성공주의 모습, 좀 더 나은 교회의 시설들과 건물들의 모습, 엘리트 성도들로 가득 채우고 좀 더 나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수적인 부흥에 만족해하는 현대교회들, 그리고 마치 그런 것이 복음인 양 따르는 많은 교회들의 모습들이 ‘다시스의 현장’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렇게 성공주의를 추구하게 되면 처음 순수했던 신앙이 종교적으로 바뀌면서 교회도 하나의 기업경영처럼 영혼을 사랑하는 것보다 업적과 실적 중심의 평가에 마음을 빼앗겨버립니다. 그렇게 다시스를 향하여 가는 도중에 결국 요나는 풍랑을 만나 물고기의 뱃속으로 던져집니다.
2. 소명의 길은 ( 성공 )이 아닌 ( 성실 )을 추구하는 길입니다.
니느웨 성을 요나는 하루 동안만 다니며 외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루라고 번역된 말은 하나를 뜻을 하는 one이 아니라, 첫 번째를 뜻하는 first입니다. 3일을 충성해야 되는데 하루만 했음에도 그 결과가 첫쨋날에 다 이루어지고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본래는 하루만 충성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3일을 모두 채우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는 ‘성공’이라는 말과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성공이 없다”라는 사실과 함께 보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일관되게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성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하여 우리는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성공이 아니라 성실을 원하신다!”
3. 진정한 ( 하나님 )의 ( 선교 ) 마인드가 있어야 합니다.
요나는 마치 자신이 심판의 주권자인양 니느웨 성의 구원과 심판에 대해서 결론을 맺어놓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결정을 실행하기라도 하듯이 나름 확신에 찬 거침없는 행동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성경에 등장하는 그 어느 선지자들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을 향한 분노와 거친 언행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만큼 자신이 옳다는 확신에 차있었습니다. 그런 요나에게 하나님의 질문으로 요나서의 마지막은 장식됩니다. 그 질문의 핵심은 “요나, 네가 나냐?” 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주권은 전도자에게도 선교사에게도 있지 않습니다.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한 사람에게도 있지 않습니다. 오직 창조주가 되시고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요나서는 바로 이 점을 소명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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