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8]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는 장소가 다름 아닌 회당 안이었습니다.
1. ( 교회 ) 안에도 더러운 ( 귀신들린 )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더러운 귀신’이라고 기록한 단어는 ‘아카싸르톤 프뉴마’ 즉 ’더러운 영‘’입니다. 교회 생활을 잘한다고 다 거룩한 성도가 아닙니다. 겉모습만 성도의 모양을 하고 있지, 그 마음과 생각은 성경적 가르침과는 상관없이, 아직도 세상적인 가치관과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면 아직 ‘더러운 영’ 그대로인 것입니다. 마치 냉장고 안에서도 음식이 부패하듯이 교회에 다니면서 심지어 거룩한 직분을 갖고, 겉으로 봐선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내면에는 심각한 영적인 문제 안고 살아 갈 수 있다는 놀라운 경고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증거하는 핵심은 교회 안에서 거룩한 직임과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명예욕과 권력욕, 사리사욕과 탐심 같은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힌 채 신앙인의 겉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엄중한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2. 무엇보다도 먼저 ( 영혼 )이 ( 잘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새롭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외형적인 제도개혁이나, 신학연구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속에 있는 영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배만 부르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배부른 다음부터가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경제문제가 해결된 부자들은 평안하게 살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잘 되는 것의 순서에서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더러운 귀신, 더러운 영은 예수님에게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면서 즉 예수님과의 관계 맺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잘 알면서도 자신과 예수님을 연관 짓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나 자신을 연관시켜 생각하며 생활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 권위 )의 본질은 ( 사랑 )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권세와 권위가 있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본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들도 복종하고 순종하게 하는 예수님의 그 권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본질이 바깥으로 표출되어 나온 것이 권위요 권세라고 한다면, 그것은 저는 한마디로 ‘사랑’이라고 단언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마음으로 치유하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가르치시는 것, 귀신을 내쫓으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오늘 교회지도자의 권위와 권세는 본질을 추구하는 인격과 삶, 사역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세상적인 성공보다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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