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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12.03]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17. 12. 03
  • 말씀본문 | (이사야 64:1∼9)

오늘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강절입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 백성들이 탄식 가운데 오실 메시야를 대망하는 기도문입니다.


1. ( 믿음 )의 여정 중에는 하나님께서 ( 침묵 )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끝내고 조국으로 돌아간다고 할 때, 그들의 마음은 심히 설레었을 것입니다. 거대 제국 바벨론이 신흥제국 페르시아에게 멸망당한 것도, 그리고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모든 포로 민족들에게 조국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한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조국으로 돌아온 감격도 잠깐, 그들은 비정한 현실을 대면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폐허가 된 조국을 회복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기도자는 탄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침묵하는 것 같은 경험은 결코 놀라운 것도 아니며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제대로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말씀하시는 경험보다는 침묵하시는 것 같은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 죄악 ) 때문에 ( 침묵 )하신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기도자는 유다 백성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그로 인해 그분은 그들의 호소와 간구에 침묵하고 계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65장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 때문에 얼굴을 감추셨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죄에 물들어 있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죄로부터 돌아서기를 기다리시며, 돌아오는 죄인을 맨발로 나와 끌어안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침묵에 익숙해지는 것, 그리고 침묵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 바로 그것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기에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기다립니다. ‘보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늘 설렘이 있습니다. 그래서 늘 희망을 가집니다.

 

3. 주님의 ( 다시 오심 )을 ( 기쁨으로 )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대강절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대강절은 무엇보다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다립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마지막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리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유롭게, 넉넉하게 그리고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전심으로 감당하면서 기다립니다. 기다림 중에는 피하고 싶은 끔찍한 기다림이 있습니다. 갚을 길 없이 빚쟁이가 정해 놓은 그 날을 맞아야 하는 기다림은 그 자체가 고통입니다. 그러나 기다림 중에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기다림도 있습니다. 결혼 날을 잡아놓고 그 날을 준비하는 신랑신부의 기다림은 행복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