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오늘 본문이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금송아지는 (미성숙)한 신앙이 만들어낸 (불량품)입니다.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는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신이었을까요? 아니면 백성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간이 볼 수 있는 형상으로 만든 것일까요? 많은 분들이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는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신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어보면, 그 질문에 대한 바른 대답은 후자라는 것을 곧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하고 있는 우리들도 금송아지를 만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을 섬긴다는 말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드는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2. 지금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금송아지의 (출현)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만든 사건은 이때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고 있지를 않습니다. 어찌 보면 죽지 않는 금송아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금송아지 사건은 구속사의 강물에 흘러든 흙탕물 줄기와도 같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남북이 분열되자마자 곧바로 북쪽 이스라엘이 남쪽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을 의식하면서 이를 견제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 바로 금송아지였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반복되는 것이 금송아지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 옛날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도 반복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금송아지는 만들어 예배당 안에 세워두진 않았을는지 몰라도, 이것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눈이 보이는 화려함으로 장식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요?
3. 진정한 (중보기도)는 인간의 (이기심)을 뛰어넘습니다.
아론은 “우리의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라”는 저들의 요구와 욕망을 따라 조치했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충동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러한 현상을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이 대신해서 매 맞을 각오를 하고 중보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충동자 아론입니까? 중보자 모세입니까? 우리는 중보기도가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쉽지 않습니다. 본래 우리 인간이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란 바로 이런 인간의 이기심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들에게는 서로의 중보기도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서로에게 기도의 동역자가 되도록 합시다. 우리의 연합이 사단의 진을 파하고, 하나님의 뜻을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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