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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2.16] 복 있는 사람은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5. 02. 16.
  • 말씀본문 | 시편 1:1~6

복 있는 사람은(시편 1:1∼6)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노래합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옳은) 것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하는 존재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시인은 먼저 복 있는 사람의 모습을 설명하기에 앞서서 복 있는 사람이 반드시 피해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복 있는 사람의 결단으로 꾀, 죄, 오만 등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 포기하는 선택(decision)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과 선택을 하기 위하여 ‘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창세기 13장에서 롯은 보이는 대로 선택했습니다. 넉넉한 물을 보고, 자원이 풍부한 것을 보고, 그것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화평을 선택하고 화평하기 위하여 양보 즉 버리는 선택과 결단을 합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가장 좋은 선택과 옳은 결정은 하나님입니다.


2.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들로부터 악한 영향을 받지 않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선한 존재들로부터 선한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는 말씀을 선택해야 합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말씀의 즐거움 안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주야(晝夜), 낮은 밝고 형통하고 즐거울 때를 가리킵니다. 밤은 어둡고 슬프고 실패할 때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야로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환경을 초월하여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즐거워하면서 깊이 묵상하는 말씀 가운데 내 마음과 영혼에 깊이 파고들어 오는 음성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음성인 것입니다.


3. 복 (받는) 사람보다 복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 받는 삶’을 원하지만, 더 좋은 것은 ‘복 있는 삶’입니다. ‘‘복 받는’이라는 표현은 아직은 이뤄지지 않는 미래형이라면, ‘복 있는’은 지금 소유하고 있는 현재형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복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복 있는 사람이라고 선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이미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팔복 선언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제자들의 정체성, 아이덴티티를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미 소금이다. 너희는 장차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상의 빛이다!” 왜요? 예수님과 함께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