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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04.27]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 설교자 | 김봉성 담임목사
  • 설교일자 | 2025. 04. 27.
  • 말씀본문 | 누가복음 17:5~10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누가복음 17:5∼10)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당시 천대받는 잡초, 그것도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씨앗을 믿음의 중요한 핵심 내용으로 말씀하십니다.


1. 우리는 신앙의 (기준)을 자신에게서 (주님)에게로 옮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앞에는 실족게 하는 자에 대한 연자맷돌 이야기와 또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반응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제자들은 아직은 믿음이 부족하기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핑계인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이란 신앙의 기준을 자신에게서 주님에게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다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더라도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어도 응답하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뽕나무만이 아닙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산을 옮긴다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요? 그러려면 정말로 더 큰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실제로 그런 일이 가능한 일입니까?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강조점은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뽕나무와 산 그리고 바다보다도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는 점입니다.


2.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우리의 (기준)과 다릅니다.


  겨자씨가 강조하는 바는 매우 명확합니다. 그것은 ‘매우 작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작은 믿음만 있어도 된다”라는 말입니다. 과연 예수님은 그런 의도로 말씀하신 것일까요? 우리는 보통 어떤 사람을 보고 믿음이 좋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신앙 행위나 업적을 보면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믿음을 좋게 평가한 사람들의 경우는 그런 겉으로 드러난 것들이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유무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겨자씨는 크기가 작습니다. 그러나 그 씨가 아무리 작아도 있으면 결국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즉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을 말씀하시는 까닭은, “믿음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평가와 기준은 우리의 기준과는 다르십니다.


3. 우리는 아무리 (큰 일)을 이루어도 (마땅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무익한 종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속에서 당시 제자들이 느끼고 있는 부족한 믿음 상태에 대한 감정은 사실 지금 우리의 일상 가운데 자주 찾아오는 감정들입니다. 더 큰 믿음, 아주 특별하고 강한 믿음을 주시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작은 믿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것이 사도들의 마음이었고 지금 우리의 마음입니다. 문제는 천국에 간 다음이 아니라, 오늘이라고 하는 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입니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정말로 무익하기 이를 데 없는 쓸모없는 존재인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도 작지만 확실한 믿음을 추구해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져 있는 삶의 조건 속에서 내가 어떻게 의미를 발생시키며 살 것인가를 묻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