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1]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사도행전 16:16∼34)
빌립보에서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위해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것은 고난과 결박이었습니다.
1. (억울함) 속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귀신 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었으면 칭찬받고 사람들로부터 환대를 받아야 마땅한데도 오히려 엉뚱하게 모진 매질 후에 감옥에 갇히고 발에 차꼬까지 채워진 형편이 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렇게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앞에서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줄 때 오직 행하였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서도 지진과 함께 옥문이 다 열리고 죄수들이 도망갔을 것이라고 스스로 좌절하고 놀라자빠졌던 간수에게 한 말도 오직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믿음의 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해석한 것입니다.
2. 진실된 (기도)가 (결박)을 풉니다.
바울과 실라는 깊은 감옥이라는 절망의 공간에서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럴 때 그들의 찬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고백이었고, 절망을 이기는 영적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와 찬송이 바로 기적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기도가 어떤 문제를 묶거나 풀 수 있음을 보장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합심기도나 통성기도는 그렇게 작동하고 있습니까? 문제는 기도의 진실성입니다. 진정성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간절함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얼마나 일치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모든 것이 풍족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진실한 감사와 기도와 찬송이 없습니다.
3. 발이 (차꼬)에 매여 있어도 마음은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그토록 매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발은 차꼬에 매여 있었으나 마음은 하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의 본질은 해바라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해바라기가 아침에 해가 떠오르면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그 해가 가는 대로 계속 따라다니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날마다 그 마음이 하나님 나라를 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이 불행하게도 마음이 땅에 붙어서 날지를 못합니다. 날개 부러진 새처럼 이상하게 예수님은 믿고 있는데도 마음이 땅에 붙어 있어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기에 조금만 마음대로 되지 아니하면 짜증을 내고 불평하며 욕구불만에 싸여 기쁨이 없습니다. 찬양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병에 걸려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앉아 하늘을 사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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