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2025년 09월 07일자 칼럼] 백로(白露)의 영롱한 이슬처럼

  아침 이슬이 하얗게 맺히는 절기, 백로(白露)가 오늘이라는 시간을 타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상상으로 그려보는 백로의 아침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와 같습니다.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방울은 새벽빛을 머금고 진주알처럼 빛나고, 거미줄 위에서 반짝이는 작은 방울들은 서로를 잇대어 더욱 싱그러운 색을 뽐냅니다. 뜨겁게 불타던 태양의 기세가 자취를 감추자, 세상은 마치 가면을 벗은 얼굴처럼 그 고유한 빛깔을 드러냅니다. 이렇듯 작은 물방울 하나에도 생명의 신비가 깃들어 있습니다.

  한껏 뻗어 오르며 몸부림쳤던 여름이 지나면, 들판의 벼는 고개를 숙이고, 들과 산의 나무들은 알찬 열매를 내놓습니다. 이는 단순한 계절의 풍경이 아니라, 영혼의 숙성을 비추는 은유이기도 합니다. 씨를 뿌리고 땀을 흘린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열매가 익습니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겉으로 무성했던 잎사귀가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을 때, 비로소 그동안 우리 안에서 길러온 내적 열매의 빛깔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을은 그렇게 겉모습을 지우고, 보이지 않는 깊이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백로의 서늘한 아침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의 영혼은 지금 어떤 열매로 익어가고 있는가?” 백로의 영성은 우리에게 다음의 것들을 가르칩니다. 과잉의 열정에서 물러서기, 고요의 시간 안에 머물기, 드러난 열매 속에서 은총을 깨닫기, 그리고 빈 가지의 기다림 속에서 새 생명의 약속을 품기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