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지는 가을은 허장성세(虛張聲勢)를 거두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손짓합니다. 우리의 삶이 늘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참 컸습니다. 과분한 은혜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눈물겨운 순간도 있었지만 그만큼 위로도 컸습니다. 마음이 무거운 순간도 있었지만 그 짐으로부터 해방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세상천지에 혼자인 것 같이 쓸쓸한 순간도 있었지만 말없이 다가와 품이 되어준 이들 또한 있었습니다. 건강이 여의치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 때문에 더욱 생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서리 내리기 전까지는 탱자에 향기가 깃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매서운 한기(寒氣)를 견디어내야 향기를 머금을 수 있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감사신앙은 하나님과의 거래가 아닙니다. 무엇을 많이 축복받아서 그 대가로 감사하는 소위 ‘소유감사’를 넘어서야 합니다. 깨닫고 보면 우리 주변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기적입니다. 언제나 늘 그랬듯이 이제부터 또 다시 겨울이 서둘러 올 것입니다. 된서리를 맞고 녹아버린 잎들, 그리고 미처 여물지 못한 열매를 볼 때면 안쓰럽습니다. 우리 믿음이 그런 것이 아닌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된서리가 내린 후에 더욱 깊은 향기를 머금는 것입니다. 깊어가는 이 가을, 우리 삶에도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향기와 맛이 배어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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