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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2년 06월 12일자 칼럼]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태도

  초대 교회에서 가장 심각한 분열은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의 갈등이었습니다. 택함 받은 백성이라는 유대인들의 자부심은 다른 나라의 타민족 사람들에 대한 멸시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신 까닭은 복의 매개자로 살라는 것이었는데 정작 그들은 그것을 특권으로만 이해하고 사유화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나는 다르다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허위의식은 건강한 관계 맺음을 가로막는 질병입니다. 그러한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언제나 다른 이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히곤 합니다.

  제가 경계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사람을 어떤 이미지 속에 가두는 일입니다. 자기가 잠시 경험했던 그 사람의 이미지가 마치 그 사람 전체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일면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일면이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에 다른 면은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면만 보는 것이 편견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참 위험한 곳이 되었습니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불만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폭발 직전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신 것처럼 살아갑니다. 혹시 업신여긴다라는 단어가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는 데서 유래된 말은 아닐는지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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