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낯가림이 심한 편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만나면 일단 말수가 줄어듭니다. 낯선 것은 우리 삶에 불편한 감정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낯선 것과 대면하지 않고는 우리 정신이 커질 수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불행은 유능한 사람은 많지만 큰 정신이 없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차가 막 출발하려는 데 어떤 사람이 플랫폼에서 애타게 '슈레겔'을 부르더랍니다. 한 사람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러자 부르던 사람이 달려와 느닷없이 뺨을 한 대 때리고 가버렸습니다. 뺨을 맞은 사람은 창문을 내리더니 배를 움켜잡고 웃었습니다. 영문을 몰라 하는 이들에게 그가 말합니다. "저 바보, 내가 슈레겔인 줄 알았나봐…." 정말 통 큰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비폭력을 실천한 분이십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가해'와 '피해'라는 폭력의 악순환을 벗어난 존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모욕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되갚아 줄 생각을 포기하는 것일 겁니다. 폭력과 불의를 용인하자는 게 아닙니다.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이겨내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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