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교역자 시절 이집트 카이로의 예수 피난교회를 방문하였을 때를 저는 종종 회상합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처럼 어둠침침한 실내를 가로지르는 햇살에 뽀얀 먼지의 카펫트가 실체를 드러내는 누추한 곳이었습니다. 방문자들은 마치 점령군처럼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럴 즈음 한 이집트 여인이 제단 앞에서 입을 맞춘 후 장궤 자세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에게 그곳은 모세가 서 있던 호렙산 떨기나무의 자리처럼 다가왔습니다.
사실 이런 경험은 꽤 많습니다.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오롯이 서 있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고요함과 절제된 몸짓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자세가 아닐는지요? 교회의 교회됨은 하나님 앞에 오롯이 바로 서려는 이들의 숨겨진 태도가 기초인 것 같습니다. 그런 기초가 흔들리면 그 위에 세우는 것들은 다 부실하게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 것처럼, 교회의 존재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데 있습니다. 세상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치유하고, 온전하게 하고, 누군가의 설 땅이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너무 급하게 서둘 것은 없지만 지향은 분명해야 합니다. 아무튼, 우리의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지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고 하신 말씀을 꼭 붙들며 살다 보면 반드시 열매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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