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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년 02월02일자 칼럼] 회의 속에 감춰진 함정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나서 회의를 했는데 가나안 땅을 악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충동질했던 10명의 정탐꾼은 단 한 번도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그에 반해 여호수아와 갈렙은 3번이나 하나님을 언급하며 “우리는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라고 목이 터지도록 외쳤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10대 2, 절대 다수결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회의 법’에 따르면 전혀 하자가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교회에는 회의가 많습니다. 결정할 일이 많으니 회의를 자주 해야 하고,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회의 시간이 길어집니다. 특히 노회와 총회와 관계된 일의 대부분이 회의하는 일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많은 시간 회의를 했지만, 정작 주님과 의논하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피상적이었습니다. 회의보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회의를 한 시간 했으면 기도는 두 시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는 1∼2분에 그치고 회의는 1∼2시간씩 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교회가 어려움에 빠진 중요한 함정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문제가 생기면 회의하라는 말씀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한국교회는 ‘회의하는 집’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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