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2019년 06월 30일자 칼럼] 가인과 아벨

  가인과 아벨 사이에 벌어진 형제간의 비극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택 때문에 벌어집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바치는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이 바치는 제물은 받으셨습니다. 이것을 두고 하나님이 곡식보다 고기를 더 좋아하신다고 말한다면 그건 코미디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까? 칼빈주의적인 전통에서는 그 이유를 가인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나중에 동생을 돌로 쳐 죽인 것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으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인이 악인이었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야기는 나와 남을 비교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지은 사람의 살 권리까지도 인정해주신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믿음의 사람입니까? 죄지은 형제를 용서하고,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용납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믿음이 좋아 보이지만 매우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정말 잘못된 믿음입니다. 다양성을 수용하려는 열린 마음, 그리고 다른 이들을 내 뜻대로 장악하려는 마음을 억제하는 능력이야말로 믿음의 척도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