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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9년 02월 24일자 칼럼] 3.1운동 100주년을 맞으며

1919년 당시 34년밖에 되지 않은 한국교회는 교인 20~22만으로 전 국민의 1~1.5%에 불과했음에도 신도 100만 이상의 천도교보다 더 많은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3.1 운동의 활동무대는 주로 경의선, 경원선을 따라 교회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하여 기독교 인사들이 거주하던 곳들이었습니다. 3.1 운동의 전국적인 확산은 교회와 기독교 학교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때문에 교회가 본 피해도 컸습니다. 일제가 비폭력 무저항 운동에 무차별 총격을 시작한 곳이 기독교가 가장 왕성하였던 평북 선천에서부터였습니다. “무모하게 만세 운동한다고 독립이 될  리가 있겠냐?”라고 하시는 사람도 있겠지만, 3.1 만세운동의 진정한 성과는 ‘대한민국’의 탄생입니다. 만세운동을 하면서 애국지사들은 앞으로 이 나라를 끌어갈 주체가 누구인지를 읽었습니다. 일제에 나라를 넘긴 ‘권력 계층’이 아니라 이 땅의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제국’에서 ‘대한’은 이어받되, 그 주권을 ‘황제’로부터 ‘백성’으로 바꾼 것입니다. 황제가 주인인 ‘대한제국’으로부터,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으로 결국 이는 민족정신으로 승화되어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정신적 초석이 되었고, 나아가서 해방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도 그 위에 쌓아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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