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말이 참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흙수저로 태어났던 금수저로 태어났든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어떻게 태어났느냐가 아닙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 역시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 누군가는 다섯을, 누군가는 둘을, 누군가를 하나를 가지고 태어나는지를 말입니다. 다만 그 비유에서 하나님께서 물으시는 것은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의 삶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흙수저로 태어난 사람 역시 하나님께서 그 삶에 대하여 물으실 것입니다 . 바로 그것은 ‘책임’입니다. 태어나는 것은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책임이 없지만,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기에 책임이 있지 않겠습니까? ‘책임’이 성숙한 자의 몫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신앙이 성숙하다는 것은 점점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자신이 져야할 책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은, 다른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에 대한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