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하면 자동반사적으로 시골집 초가지붕 위에 열렸던 둥근 박이 연상됩니다. 보름달과 마주 보고 있는 희고 큰 둥근 박의 이미지는 아득한 그리움이 되어 추억의 이미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박을 바라보며 어른들이 들려주던 흥부 놀부 이야기에 귀를 쫑긋했던 어린 시절이 그립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수선해도 추석을 앞두고 세상이 갑자기 밝아진 듯싶습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도 다소 밝아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선물 꾸러미를 들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촌스러워 보였는데, 이제는 그게 참 좋아 보입니다. 누구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나이가 든 증거랍니다.
현대를 사는 현실은 우리를 정신없이 밀어붙입니다. 하나의 과업을 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일감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숨차게 달려간 대가로 우리가 얻는 것이라는 게 사실 별거 아닙니다. 다소의 경제적 여유, 잘난 사람이라는 평판, 남보다 앞서간다는 자부심, 그런데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포기한 것들은 무엇이지요? 마음의 여유, 이웃들과의 다정하고 한가로운 대화, 자연과의 교감,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그렇다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다음 주일(9월 22일)이면 추분(秋分)입니다. 진정한 가을의 시작입니다. 허장성세를 거두고 내적으로 깊어지는 시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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