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사순절 기간 중 교회에서는 금욕과 절제의 방법으로 금식이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금식은 개인의 역량과 에너지 그리고 순종에 따라 기도와 늘 동반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절제한다고 해도 욕심을 결코 없애지 못하며 오히려 고행으로 육체만 약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행을 해야 한다고 못 박는 그런 율법적인 금식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절제와 고행을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금욕이 자신을 학대하는 것에 가치를 둘 때 그것은 절제가 아니라 고행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지적하신 것처럼 자기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금식이나 고행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순절의 금욕과 절제훈련은 단순히 고행하는 참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절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생각하고 신앙을 점검하는 절제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언제나 십자가를 생각하는 절제가 되어야 합니다.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목사님의 아내가 혼자서 우는 스펄전 목사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당신 왜 혼자 울고 있어요?” “내가 요즘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오? 그래서 울고 있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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