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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6년1월10일자칼럼]금수저와 금도끼

  최고 명문대학교 출신 청년의 자살 유서를 기점으로 이른바 ‘수저 등급론’이 급속히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나누는 것입니다. 저희 집에서도 자녀들과 이야기하는 중에, 자신들은 등급표에는 없는 ‘나무수저’라고 해서 웃고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는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다”는 원성을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습니다. 거기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과 좌절감이 투영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비숫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었습니다. 이른바 금도끼, 은도끼, 쇠도끼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나무꾼과 같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착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면 복을 받게 된다”는 따뜻하게 격려하는 교훈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금수저가 되었건, 금도끼가 되었건, 그것들은 사용하고자 할 때에는 도구로서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나무꾼에게는 쇠도끼가 최고의 도구입니다. 건강식의 도구로는 흙수저야말로 가장 잘 어울립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적으로 판단해 볼 때, 아무리 금수저를 입에 물고 인생의 집을 짓기 위해 힘쓰고 노력한다고 해도, 여호와께서 집을 세워주시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모든 수고가 헛된 것입니다. 진정한 축복과 행복을 얻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된 성도의 인생은 오직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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