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나 지하철에서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일어서면 다리가 불편하고, 앉아 있으려니 마음이 불편하고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다리가 좀 불편하더라도 마음이 편안한 것을 택한 사람은 양심의 자유가 더 귀한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조금 가난하고 불편하게 살더라도 양심대로 사는 사람이 차원 높은 인간입니다. 결국 사람은 내가 가지는 자유의 질에 따라 사람의 값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높은 의미에서의 신령한 자유란 양심의 자유요 신앙의 자유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있던 시절에는 신사참배하면 자유로운 몸이 되고, 거부하면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의 정조를 굽히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면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야 할 사람이 들어가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럴 때 그의 몸은 자유로울 것 같지만 그의 마음은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한국 교회의 큰 별이셨던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신사참배를 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당시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는 괴로움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자유, 차원 높은 자유는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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