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대한 치열한 주장이 펼쳐진 욥기를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름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로 대하는 것이 믿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언어는 하나님 경험을 오롯이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체험은 이야기를 통해 어렴풋이 드러낼 수는 있지만 개념을 통해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불확실함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자폐적인 확신의 덫에 빠지는 순간, 사람들은 자기 확신이라는 감옥 속에 갇혀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근본주의자들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인식합니다. 선과 악,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날카롭게 대립할 뿐, 그 사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재하는 수많은 중간을 허용하지 않는 세계는 위험합니다. 그럼에도 근본주의자들은 모호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머뭇거림은 악덕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도한 열정이 종교의 옷을 입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자기들의 행위를 신의 뜻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지옥은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고 서로를 떠날 수도 없으며 그들로부터 떠날 수 없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지옥에서 벗어날 용기가 절실히 필요한 지금의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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